삼성기 신시배달 1-18세

삼성기 신시배달 1-18


범례

『고기古記』의 인용이 일연의 『삼국유사』로부터 시작되었으나, 지금은 『고기』를 볼 수 없으므로 이제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를 합본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환단고기』라 한다.

「삼성기』는 두 종류가 있으나 모두 완편完編은 아닌 것 같다. 안함로가 찬술한 것은 오래 전부터 우리 집안에 전해 내려 온 것이다. 이제 이를 「삼성기전」 상편으로 하고, 원동중이 찬술한 것은 평안도 태천泰川의 진사 백관묵白寬默으로부터 얻은 것인데 이를 「삼성기전」하편으로 하며, 이 두 편을 합본하여 「삼성기전』이라 한다.

『단군세기』는 홍행촌수가 엮은 것으로, 바로 행촌 선생 문정공文貞公*이 전한 것이다. 이 책 또한 백진사에게서 얻은 것으로, 진사의 가문은 예로부터 문재로 이름이 높은 집안이라 소장하고 있는 책이 많았다. 두 종류 사서史書가 모두 이 집에서 나왔으니, 어찌 만금을 주는 것에 이를 비유할 수 있으리오. 가히 조국의 앞날을 밝혀 주는 크나큰 영광이라 할 것이다.

『북부여기』 상·하는 복애거사伏崖居士 범장이 지은 것이다. 예전에 『단군세기』와 합편해 놓은 것을 삭주朔州 뱃골[梨洞]의 진사 이형식의 집에서 얻었는데, 『단군세기』는 백진사가 소장한 것과 한 글자도 다름이 없다. 근래에 와서 별본이 세상에 나돌고 있는데, 이 별본의 내용은 앞의 『북부여기』와 자못 다른 바가 많아 다시 언급하지 않는다.

『태백일사』는 일십당 주인 이맥이 엮은 것으로 해학 이기 선생이 소장해 온 것이다. 대개 환단 이래로 서로 전해 온 교학 경문이 모두 여기에 갖추어져 있으니, 인용한 전거가 상세하여 일목요연하다.
또 『천부경』과 『삼일신고』 두 글의 전문이 모두 여기에 실려 있으니, 이는 실로 낭가郎家의 『대학』 『중용』과 같은 것이다.

아아! 환국·배달·조선(환단)이 서로 전한 삼일심법三一心法이 진실로 이 책 속에 들어 있으니, 대광명의 동방 신교의 진리 가르침[太白眞敎: 神敎]이 중흥하는 기틀이 아니고 무엇이랴! 손발이 절로 춤추며, 흥겨워 외치고 싶고 기뻐서 미칠 듯하도다!

『환단고기』는 모두 해학 이기 선생의 감수를 거쳤으며, 또 내가 정성을 들여 부지런히 편집하고 옮겨 적었다. 그리고 홍범도·오동진 두 벗이 자금을 대어 목판에 새겨서 인쇄하였다. 이로써 우리 자신의 주체성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크게축하할 만한 일이요, 또한 민족 문화의 이념을 표출하게 되었으니 크게 경축할 만한 일이며, 또 한편으로 세계 인류가 대립을 떠나 공존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으니 더욱 경축할 만한 일이다.

신시개천神市開天 5808년, 광무光武 15년 신해(1911)년 5월 광개절에 태백 진리[神敎]의 정신을 계승한 선천宣川 사람 계연수 인경이 묘향산 단굴암에서 쓰노라.
인경: 계연수의 자字.

삼성기 상

환인천제의 환국 개창.
우리 환족이 세운 나라가 가장 오래 되었다.
하느님은 사백력의 하늘에 계시며, 홀로 우주의 조화를 부리는 신이시다. 광명으로 온 우주를 비추고, 대권능의 조화로 만물을 낳으며, 영원토록 사시며[長生久視] 항상 즐거움을 누리신다. 지극한 조화기운[至氣]을 타고 노니시고 스스로 그러함(대자연의 법칙 : 道)에 오묘하게 부합하며, 형상 없이 나타나고 함이 없이 만물을 지으시며 말없이 행하신다.

어느 날 동녀동남 800명을 흑수와 백산의 땅에 내려 보내시니, 이에 환인께서 만백성의 우두머리가 되어 천계(천산 동방의 환국)에 거주하시며 돌을 부딪쳐서 불을 피워 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치시니 이 나라를 환국 (광명의 나라)이라 했다. 이 환국을 다스리신 분을 ‘천제 환인씨’라 부르고, 또한 ‘안파견’이라고도 불렀다. 환국은 7세를 전했으나, 그 연대는 자세히 살필 수 없다.

환웅천황의 신시배달 시대.
그 후 환웅씨가 환국을 계승하여 일어나 하늘에 계신 상제님의 명을 받들어 백산과 흑수 사이의 지역에 내려오셨다. 그리하여 천평에 우물을 파고 청구에 농사짓는 땅을 구획하셨다.

환웅께서 천부와 인을 지니고 오사를 주관하시어 세상을 신교의 진리로 다스려 깨우쳐 주시고[在世理化],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시며[弘益人間]*, 신시에 도읍을 정하여 나라 이름을 배달國稱倍達]이라 하셨다.

삼칠일(21일)을 택하여 상제님께 제사지내고 바깥일(外物)을 꺼리고 삼가 문을 닫고 수도하셨다. 주문을 읽고 공덕이 이뤄지기를 기원하셨으며, 선약을 드시어 신선이 되셨다. 괘를 그어 미래의 일을 아시고, 천지변화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신명을 부리셨다.

여러 신령한 인물과 명철한 인재를 두루 모아 신하로 삼고, 웅씨족 여인[熊氏)을 맞아들여 황후로 삼으셨다. 혼인 예법을 정하여 짐승 가죽으로 폐백을 삼게 하시고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게 하시고, 시장을 열어 교역을 하게 하시니, 구환족九桓族이 사는 모든 지역에서 공물과 세를 바치고, 뭇 새와 짐승들까지 따라서 춤을 추었다.

후세 사람이 이분을 지상의 최고신으로 모시고 세세토록 제사 지내기를 그치지 않았다.배달국 신시 시대 말기에 치우천황이 계시어 청구를 널리 개척하셨다. 환웅천황의 배달 시대는 18세를 전하였으며 1,565년을 누렸다.

단군왕검의 조선 개국
이후에 신인 왕검이 불함산의 박달나무가 우거진 터(墟)에 내려오셨다. 왕검께서 지극히 신성한 덕성과 성인의 인자함을 겸하시고, 능히 선대 환인, 환웅 성조의 법을 이어 받고 하늘의 뜻을 받들어 인륜의 푯대를 세우시니, 그 공덕이 높고 커서 찬란하게 빛났다. 이에 구환의 백성이 모두 기뻐하고 진실로 복종하여 천제의 화신으로 추대하여 임금으로 옹립하니, 이분이 바로 단군왕검이시다. 왕검께서는 신시 배달의 옛 법도를 되살리시고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여 나라를 여시니, 그 이름을 조선이라 하셨다.
단군왕검께서는 두 손을 맞잡은 채 단정히 앉아 함이 없이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아 다스리셨다. 현묘한 도를 깨치셨으며, 뭇 생명을 접하여 교화하실 때, 팽우彭虞에게 명하여 토지를 개척하게 하시고, 성조에게 궁실을 짓게 하시고, 고시高矢에게 농사일을 맡게 하시고, 신지에게 글자를 만들게 하시고, 기성에게 의약을 베풀게 하시고, 나을에게 호적을 관장하게 하시고, 희羲에게 괘서를 주관하게 하시고, 우尤에게 병마兵馬를 담당하게 하셨다.

단군왕검께서 비서갑에 사는 하백의 따님을 맞이하여 황후로 삼고 누에치기를 관장케 하시니, 백성을 사랑하시는 어질고 후덕한 정치가 사방에 미치어 천하가 태평해졌다.
병진(단기 1909, BCE 425)년 주周나라 고왕 때 나라 이름을 대부여로 바꾸고 도읍을 백악산에서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으며, ‘8조 금법으로 법도를 세우셨다. 책읽기와 활쏘기에 힘쓰게 하고, 하늘(삼신상제님)에 제사 지내는 것을 근본 가르침으로 삼았으며, 농사와 누에치기에 힘쓰고 산과 못을 일반 백성에게 개방하셨다.
죄를 지어도 처자식에게 미치지 않게 하고,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힘을 합하여 다스리셨다.

남자에게는 일정한 직업이 있고 여자에게는 좋은 배필이 있었다. 집집마다 재물이 풍족하고, 산에는 도적이 없고 들에는 굶주리는 사람이 없으며, 악기 소리와 노랫소리가 온 나라에 넘쳐흘렀다.
시조 단군왕검께서 무진(BCE 2333)년에 나라를 다스리신 이래 47세를 전하니, 역년은 2,096년이다.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와 동명왕 고두막한
임술(단기 2095, BCE 239)년 진왕 정 때 신인 대해모수가 응심산에서 일어났다. 정미(단기 2140, BCE 194)년 한나라 혜제 때 연나라 유민의 우두머리 위만이 서쪽 변방 한 모퉁이를 도적질하여 차지하였다. 이에 번한의 왕준이 맞서 싸웠으나 당해 내지 못하고 바다로 도망하였다. 이로부터 삼한에 속한 백성들은 대부분 한수 이남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이후 한때 여러 영웅이 요해海의 동쪽에서 군대를 일으켜 서로 힘을 겨루더니, 계유(단기 2226, BCE 108)년 한무제 때 한나라가 쳐들어와 위만의 손자 우거右渠를 멸하였다. 이때 서압록 사람 고두막한이 의병을 일으켜 또한 단군이라 칭하였다. 을미(단기 2248, BCE 86)년 한나라 소제때 고두막한이 부여의 옛 도읍을 점령하고 나라를 동명이라 칭하시니, 이곳은 곧 신라의 옛 땅이다.

계해(단기 2276, BCE 58)년 봄 정월에 이르러 고추모(고주몽)가 역시 천제의 아들로서 북부여를 계승하여 일어났다. 단군의 옛 법을 회복하고, 해모수를 태조로 받들어 제사 지내며 연호를 정하여 다물이라 하시니, 이분이 곧 고구려의 시조이시다.

삼성기 하

인류의 시조와 동서 문명의 시원 국가 환국
인류의 시조는 나반那般이시다. 나반께서 아만과 처음 만나신 곳은 아이사비阿耳斯庀*이다. 두 분이 꿈에 천신(상제님)의 가르침을 받고 스스로 혼례를 올리시니 환족의 모든 족속[九桓族]이 그 후손이다.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昔有桓國]. 백성들은 풍요로웠고 인구도 많았다. 처음에 환인께서 천산에 머무시며 도를 깨쳐 장생하시니 몸에는 병이 없으셨다. 하늘(삼신상제님)을 대행하여 널리 교화를 베풀어 사람들로 하여금 싸움이 없게 하셨다. 모두 힘을 합해 열심히 일하여 굶주림과 추위가 저절로 사라졌다.

환국의 통치자와 열 두 나라 연방
초대 안파견환인에서 2세 혁서환인, 3세 고시리환인, 4세 주우양환인, 5세 석제임환인, 6세 구을리환인을 이어 7세 지위리환인에 이르렀는데, 환인을 단인檀仁 이라고도 한다.

「고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파내류산 아래에 환인씨의 나라가 있으니 천해의 동쪽 땅을 또한 파내류국이라 한다. 그 땅의 넓이는 남북으로 5만 리요, 동서로 2만여 리이니 통틀어 환국이라했다. 이 환국은 다시 여러 나라로 구성되었는데, 그 이름은

1.비리국, 2.양운국, 3.구막한국, 4.구다천국, 5.일군국, 6.우루국(일명 필나국), 7.객현한국, 8.구모액국, 9.매구여국(일명 직구다국), 10.사납아국, 11.선패국(일명 시위국 또는 통고사국), 12.수밀이국으로 합하여 12국이다.

천해는 지금의 북해이다.
환국은 7세를 전하니, 그 역년은 3,301년인데, 혹자는 63,182년이라고도 하니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환국 말, 환웅의 동방 개척
환국 말기에 안파견께서 삼위산과 태백산을 내려다보시며 이렇게 물으셨다. “두 곳 모두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弘益人間]* 수 있는 곳이다. 과연 누구를 보내는 것이 좋은가?”
오가의 우두머리가 모두 대답하였다.
“서자에 환웅이란 인물이 있는데 용기와 어짊과 지혜를 겸비하고, 일찍이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세상을 개혁하려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그를 동방의 태백산(백두산)으로 보내 다스리게 하십시오.”

이에 환인께서 환웅에게 천부 天符와 인印 세 종류를 주시며 명하셨다.
“이제 인간과 만물이 이미 제자리를 잡아 다 만들어졌으니, 그대는 노고를 아끼지 말고 ‘무리 3천 명’을 이끌고 가서, 새 시대를 열어 가르침을 세우고(開天立敎) 세상을 신교의 진리로써 다스리고 깨우쳐서[在世理化] 이를 만세 자손의 큰 규범으로 삼을지어다.”

환웅께서 동방을 개척할 당시 기이한 술법을 좋아하던 반고라는 인물이 있었다. 반고가 개척의 길을 따로 나누어 가기를 청하므로 환인께서 이를 허락하셨다. 드디어 반고는 많은 재화와 보물을 싣고 십간十干 십이지十二支의 신장을 거느리고 공공共工· 유소有樂· 유묘有苗· 유수有燧와 함께 삼위산 납림拉林 동굴에 이르러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이들을 제견이라 하고, 반고를 반고가한 이라 불렀다.

이때 환웅께서는 무리 3천 명을 이끌고 태백산(백두산) 마루, 신단수 아래에 내려오시어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시니, 이분이 바로 환웅천황 이시다.
환웅께서 풍백風伯과 우사雨師와 운사雲師를 거느리시고, (오가五加에게) 농사· 왕명· 형벌· 질병· 선악을 주장하게 하시고, 인간 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을 신교의 진리로써 다스려 깨우쳐서[在世理化]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셨다(弘益人間).

신시배달의 건국

이때 웅족과 호족이 이웃하여 함께 살았다. 일찍이 이 족속들은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기도드리는 신단수에 가서 “삼신의 계율을 따르는 백성이 되기를 바라옵니다” 하고 빌었다. 환웅께서 이 소식을 듣고 “가히 가르칠만하도다” 하시고, 신령한 도술로써 환골換骨케 하여 정신을 개조시키셨다. 이때 먼저 삼신께서 전해 주신 정해법靜解法으로 그렇게 하셨는데, 쑥 한 묶음과 마늘 스무 매를 영험하게 여겨 이를 주시며 경계하여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이것을 먹을지어다.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고 기도하라. 그리하면 참된 인간이 되리라.”

이에 웅족과 호족 두 족속이 함께 쑥과 마늘을 먹으면서 삼칠일(21일)을 지내더니, 웅족은 능히 굶주림과 추위를 참아 내고 계율을 지켜 인간의 참모습[儀容]을 얻었으나, 호족은 방종하고 게을러 계율을 지키지 못하여 좋은 결과(善業]를 얻지 못하였으니, 이것은 두 족속의 성정性情이 서로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에) 웅족 여인들이 시집갈 곳이 없어 매일 신단수 아래에 와서 주문을 외우며 아이 갖기를 빌었다. 이에 환웅께서 이들을 임시로 환족으로 받아들여 환족 남자들과 혼인하게 하셨는데, 임신하여 아이를 낳으면 환桓의 핏줄을 이은 자손으로 입적시키셨다.

환웅천황께서 처음으로 동방 배달민족의 새 역사 시대를 열고[開天] 백성에게 교화를 베푸실 때, 『천부경天符經』을 풀어 설명하시고 『삼일신고三一神誥』를 강론하여 뭇 백성에게 큰 가르침을 베푸셨다.

이후에 치우천황(14세 환웅, 자오지환웅)께서 영토를 개척하고, 구리와 철을 캐어 무기를 제조하는 한편 병사를 훈련시키고 산업을 일으키셨다. 이때에 구환족이 모두 삼신을 한뿌리의 조상으로 삼았다.

천황께서 소도蘇塗와 관경管境과 책화責禍를 주관하고, 백성의 의견을 모아 하나로 통일하는 화백* 제도를 두셨다. 또한 백성으로 하여금 지혜와 생명력을 함께 닦아[智生雙修] 전佺의 도에 머물게 하셨다.
그 후 구환족이 관경을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리시는 천제의 아들에 의해 모두 통일되니, 이분이 단군왕검이시다.

밀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환국 말기에 다스리기 어려운 강한 족속이 있어 이를 근심하던 차에 환웅께서 삼신의 도로써 가르침을 베풀고[以三神設], 전계로써 삶의 본업을 삼으며, 백성을 모아 맹세하게 하여 권선징악의 법을 두셨다. 이때부터 은밀히 그 강족을 제거하려는 뜻을 두셨다. 이때 각 부족의 이름[族號]이 한결같지 않고 풍속은 점점 갈라졌다. 본래 살고 있던 사람들은 호족이고, 새로 이주해 온 사람들은 웅족이었다.

호족은 탐욕이 많고 잔인하여 오로지 약탈을 일삼고, 웅족은 어리석고 괴팍하며 고집스러워서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였다. 비록 같은 곳에 살았으나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소원해졌다. 그리하여 서로 물건을 빌리거나 빌려 주지도 않고 혼인도 하지 않으며, 매사에 서로 불복하여 함께 같은 길을 가지 않았다.

이 지경에 이르자 웅족의 여왕이, 환웅께서 신령한 덕德]이 있으시다는 소문을 듣고 무리를 거느리고 찾아와 환웅을 뵙고 아뢰기를, “원하옵건대 저희들에게 살 곳을 내려 주십시오. 저희들도 하나같이 삼신의 계율을 따르는 환족의 백성이 되고자 하옵니다”라고 하였다.

환웅께서 이 말을 듣고 허락하시어 웅족에게 살 곳을 정해 주시고 자식을 낳고 살아가게 하셨다. 그러나 호족은 끝내 성격을 고치지 못하므로 사해四海 밖으로 추방하셨다. 환족의 흥성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신시배달국의 전성기

그 후 10세 갈고환웅 때는 염제신농의 나라와 국경을 정하였다. 다시 몇 세를 내려와 14세 자오지환웅이 계셨는데, 이분은 신이한 용맹이 매우 뛰어났다. 구리’와 철로 투구를 만들어 쓰고[銅頭鐵額] 능히 큰 안개를 일으키며, 구치九治를 제작하여 광석을 캐내고 철을 주조하여 무기를 만드시니 천하가 크게 두려워하였다.

세상에서는 이분을 치우천황이라 불렀는데, 속언에 치우는 ‘뇌우가 크게 일어 산하가 뒤바뀐다’는 뜻이다.
치우천황께서 염제신농의 나라가 날로 쇠약해지는 것을 지켜보시고 드디어 웅대한 포부를 품고 여러 번 서쪽에서 천자天子의 군사(天兵]를 일으키셨다.

삭도에서 군사를 진격시켜 회수와 태산 사이의 땅을 점령하시고 헌후軒侯(헌원)*가 왕위에 오르자 바로 탁록涿*의 광야로 진격하여 헌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으셨다. 이후 오장군을 파견하여 서쪽으로 고신 땅을 공격하여 공을 세우게하셨다.

이때 천하의 형세는 세 세력이 세발솥의 솥발과 같이 대치하고 있었는데, 탁록의 북쪽에 대요大撓, 동쪽에 창힐, 서쪽에 헌원이 자리잡고 무력으로 승패를 겨루었으나 서로 이기지 못했다.

당초에 헌원이 치우천황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으므로 싸울 때마다 불리하였다. 이에 대요에게 의지하고자 하였으나 도움을 얻지 못하고, 다시 창힐에게 의지하려 하였으나 여기서도 역시 도움을 얻지 못했으니, 이들 두 나라는 모두 치우천황을 추종하는 세력이었다.

대요는 일찍이 배달로부터 육십갑자의 ‘간지干支의 술법을 배웠고, 창힐은 ‘부符 같고 그림 같은 모습을 한 글자[符圖之文]’를 전수받았다. 이때 모든 제후는 치우천황의 신하가 되어 섬기지 않는 자가 없었는데, 이 또한 배달로부터 문물을 배워갔기 때문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천하의 제후가 모두 황제헌원에게 와서 복종하였으나, 치우가 가장 강포하여 천하에서 능히 그를 정벌하지 못하였다.

헌원이 섭정할 때 치우는 형제가 81명으로, 짐승의 몸을 하고 사람의 말을 하였다. 머리가 구리같이 단단하고 이마는 철같이 강하였으며 모래를 먹었다. 오구장五丘杖과, 칼[刀]과, 가지가 있는 창과, 한꺼번에 많은 화살을 쏘는 태노太弩를 만들어 천하에 그 위세를 떨쳤다. 치우는 옛 천자의 호칭이다.

신시배달국 역대기

배달倍達은 환웅께서 천하를 안정시키고 정하신 나라의 이름이다. 수도는 신시요, 후에 청구국 옮겼다. 18세를 전하니, 역년은 1,565년이다.

1세는 환웅천황桓이시니 일명 거발환居發桓이라. 재위 94년이요 천수 120세이시다.
(신시개천 원년, BCE 3897~신시개천 94, BCE 3804)

2세는 거불리居佛理환웅이시니 재위 86년이요 천수 102세이시다.
(신시개천 94, BCE 3804~신시개천 180, BCE 3718)

3세는 우야고환웅이시니 재위 99년이요 천수 135세이시다.
(신시개천 180, BCE 3718~신시개천 279, BCE 3619)

4세는 모사라 환웅이시니 재위 107년이요 천수 129세이시다.
(신시개천 279, BCE 3619~신시개천 386, BCE 3512)

5세는 태우의환웅 이시니 재위 93년이요 천수 115세이시다.
(신시개천 386, BCE 3512~신시개천 479, BCE 3419)

6세는 다의발多儀發환웅이시니 재위 98년이요 천수 110세이시다.
(신시개천 479, BCE 3419~신시개천 577, BCE 3321)

7세는 거련환웅이시니 재위 81년이요 천수 140세이시다.
(신시개천 577, BCE 3321~신시개천 658, BCE 3240)

8세는 안부련安夫連환웅이시니 재위 73년이요 천수 94세이시다.
(신시개천 658, BCE 3240~신시개천 731, BCE 3167)

9세는 양운養雲환웅이시니 재위 96년이요 천수 139세이시다.
(신시개천 731, BCE 3167~신시개천 827, BCE 3071)

10세는 갈고환웅이시니 일명 갈태천황葛台天王 또는 독로한漬盧韓이라 재위 100년이요 천수 125세이시다.
(신시개천 827, BCE 3071~신시천 927, BCE 2971)

11세는 거야발居耶發환웅이시니 재위 92년이요 천수 149세이시다.
(신시개천 927, BCE 2971~신시개천 1019, BCE 2879)

12세는 주무신州武愼환웅이시니 재위 105년이요 천수 123세이시다.
(신시개천 1019, BCE 2879~신시개천 1124, BCE 2774)

13세는 사와라斯瓦羅환웅이시니 재위 67년이요 천수 100세이시다.
(신시개천 1124, BCE 2774~신시개천 1191, BCE 2707)

14세는 자오지慈烏支환웅이시니 세칭 치우천왕尤天王이요 도읍을 청구국으로 옮기셨다. 재위 109 년이요 천수 151세이시다.
(신시개천 1191, BCE 2707~신시개천 1300, BCE 2598)

15세는 치액특額特환웅이시니 재위 89년이요 천수 118세이시다.
(신시개천 1300, BCE 2598~신시개천 1389, BCE 2509)

16세는 축다리多利환웅이시니 재위 56년이요 천수 99세이시다.
(신시개천 1389, BCE 2509~신시개천 1445, BCE 2453)

17세는 혁다세赫多世환웅이시니 재위 72년이요 천수 97세이시다.
(신시개천 1445, BCE 2453~신시개천 1517, BCE 2381)

18세는 거불단居弗檀환웅이시니 혹은 단웅檀雄이라. 재위 48년이요천수 82세이시다. (신시개천 1517, BCE 2381~신시개천 1565, BCE 2333)
배달국 환웅천황 1세에서∽18세에 이르려, 마지막 18세 거불단환웅(일명 단웅)이 왕검의 아버지이시다.

배달국 18세 거불단환웅(일명 단웅)께서는 웅씨왕의 딸 공주와 결혼을 하셨다.

   <삼성기 하> 종終    <환단고기 역사책 원문 옮김>

 

위로 스크롤